자율과제

3-4월 - 비밀의 문_박현경

14분 읽기

비밀의 문

박현경

여느 때처럼 화창한 봄날, 산책을 하다 오늘은 다른 길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항상 큰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서 되돌아오곤 했는데 오늘은 그 너머로 가고 싶었다. 느티나무를 지나 오른쪽 사잇길로 들어가니 좁다란 골목이 나왔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내심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호기심이 생겨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갔다. 골목길을 따라 걷는데 막다른 길에 작은 문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 문은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 아니었다. 그냥 벽에 붙어 있는 문이었다. 벽에 붙어 있는 문이라니……. 그 문을 열어볼까 그냥 돌아갈까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레 그 문을 열어보았다.

문을 열자 기분 좋은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눈앞에는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버드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버드나무에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리본이 달려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빨간색에는 사람, 파란색에는 물건, 노란색에는 시간이라고 쓰여 있었다.

제일 먼저 빨간색 리본을 풀어봤다. 리본 안에는 ‘제일 만나고 싶은 사람을 불러보세요. 그 사람과 하루를 함께 보낼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순간 3년 전 하늘나라로 간 오빠 생각이 났다. “오빠!” 나도 모르게 오빠를 크게 부르고 있었다. 그 순간 큰 버드나무 가지 뒤로 오빠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렇게 목소리를 듣고 싶고, 손을 만지고 싶던 오빠가 눈앞에 점점 가까워졌다. “오빠! 내가 얼마나 많이 보고 싶었는지 알아?”하면서 오빠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 오빠도 잘 지냈냐고 하면서 나를 꼭 안아주었다. 오빠와 손을 꼭 잡고 길을 걸으며,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실컷 나누었다. 오빠가 좋아하는 분식집에 가서 오징어 튀김과 떡볶이를 같이 먹으며,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웠다.

하루가 지나니 다시 그 버드나무 앞에 와있었다. 나뭇가지에는 파란색, 노란색 리본이 남아 있었다. 무슨 색 리본을 먼저 풀어볼까 고민을 하다가 ‘물건’이 쓰여 있는 파란색 리본을 풀어봤다. 리본 안에는 ‘제일 가지고 싶은 물건을 생각해보세요. 하루 종일 그 물건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제일 가지고 싶었던 목걸이를 떠올렸다. 부모님이 여행을 가실 때마다 나는 한 가지 스타일의 목걸이를 사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그 목걸이는 반짝이는 펜던트가 달린 것도 아니고, 여성스러운 예쁜 목걸이도 아니었다. 걸스카우트 목걸이처럼 양갈래로 나뉘어진 목걸이였다. 부모님은 여행을 가실 때마다 걸스카우트 스타일의 목걸이를 사오셨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목걸이가 없었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목걸이는 양갈래로 나뉘어진 검은 색 줄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단정한 금색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였다. 이 목걸이를 보면서 내가 왜 그렇게 이 목걸이를 가지고 싶었는지 생각을 해봤다. 나는 전학을 와서 할 수 없었던 걸스카우트 친구들이 그 당시에는 그렇게 부러웠나 보다. 작은 물건이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또 하루가 지나고 다시 버드나무 앞에 와있었다. 나뭇가지에는 ’시간‘이라고 쓰여 있는 노란색 리본만 남아 있었다. 마지막 리본을 풀어보니, 리본 안에는 ’과거와 미래 중 가고 싶은 시간을 골라보세요. 그 시간으로 가서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미래보다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것도 초등학교 2학년 때로 말이다. 2학년 체육시간에 반 아이들 줄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 담임 선생님이 내 뺨을 때린 적이 있었다. 그날 너무 충격을 받아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집에 가서 엄마한테 나의 억울함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도 못했다. 어린 마음에 나 혼자만 참으면 엄마도 속상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선생님이 내 뺨을 때렸을 때,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때리냐고 선생님께 큰 소리로 대들었다. 그리고 속상하고 억울해서 펑펑 울었다. 집에 돌아가서 엄마한테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했더니, 엄마는 속상했겠다면서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다음 날 엄마는 학교에 찾아가서 왜 우리 딸 뺨을 때렸냐고 할아버지 선생님에게 따졌다. 내 속이 다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작은 비밀의 문을 연 지 3일 만에 나는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집에서는 내가 실종이 됐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고 난리가 났는데, 나는 3일간의 일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누군가 그리워지고 무엇인가 가지고 싶고 어떤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을 때 다시 그 작은 문을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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