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제

9월- 책이 사라져버린 세상_한금희

옛날 옛적, 도서관에는 책이 가득 차 있었어요.책 속의 글자들은 서로 기대며 속삭였지요.“오늘은 어떤 아이가 나를 읽어 줄까?”“나는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글자들은 사람들의 눈과 마음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걸 가장 좋아했어요.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책...

9분 읽기

옛날 옛적, 도서관에는 책이 가득 차 있었어요.
책 속의 글자들은 서로 기대며 속삭였지요.
“오늘은 어떤 아이가 나를 읽어 줄까?”
“나는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글자들은 사람들의 눈과 마음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걸 가장 좋아했어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책을 덮고,
대신 반짝이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짧은 글씨면 충분해.”
“영상으로 보면 더 재밌잖아.”
사람들은 화면 속 글자들만 빠르게 훑고 웃고 떠들었어요.
책 속 글자들은 불러주는 이가 없어 점점 희미해지고 쓸쓸해졌어요.
“우리… 이제 필요 없는 걸까?”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잖아.”

어느 날 밤, 글자들은 책장을 흔들며 속삭였어요.
“이제 그만 떠나자. 우리도 사랑받고 싶어.”
글자들이 종이에서 후두둑후두둑 떨어져 나와 작은 불빛이 되어 창문 밖으로 날아갔어요.
아침이 되자 책들은 텅 빈 껍데기만 남았고, 세상에는 전자기기 속 글자들만 남게 되었지요.

사람들은 처음엔 편리하다고 생각했어요.
짧고 빠른 글씨만 있으면 된다고 여겼지요.
하지만 곧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아이들은 긴 이야기를 읽지 못했어요.
몇 줄만 읽고 곧장 화면을 넘겨 버렸지요.
그래서 머릿속에 숲을 그리거나, 용의 날개를 상상하거나, 모험의 길을 따라가는 힘이 점점 사라졌어요.

어른들은 더 심각했어요.
스마트폰이 알려 주지 않으면 약속도, 중요한 날짜도 기억하지 못했답니다.
책을 읽으며 곱씹던 생각들이 사라지자 대화는 짧아지고, 마음은 조급해졌어요.
사람들은 전자기기를 들여다보느라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았어요.
가족이 함께 있어도 각자 화면만 바라보다 잠들곤 했지요.
도시의 도서관은 텅 비어 조용해졌고, 거리는 밝은 화면 불빛으로만 가득 찼어요.
하지만 그 불빛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어두워졌지요.
텅 빈 도서관은 더 이상 누구의 발걸음도 들리지 않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조용한 도서관 한쪽에서 책장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아이가 있었어요.
그 아이의 이름은 소리였지요.
소리는 낡은 빈 책을 두 손으로 꼭 쥐며 속삭였어요.
“나는 아직 너희를 기억해. 숲 속의 모험, 바다의 노래, 별빛의 마법… 다 기억하고 있어.”

그러자 소리의 목소리를 따라 작은 불빛 글자 하나가 책 속으로 살짝 돌아왔어요.
소리는 매일 밤 친구들과 모여 책에 담겼던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아이들의 웃음과 상상력이 모일수록 사라졌던 글자들이 하나둘 돌아와 책장은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돌아온 글자들은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속삭였어요.
“우리를 잊지 말아 줘. 우리는 너희의 마음속에서 숨 쉬며, 언제든 꿈과 이야기가 되어 다시 피어날 거야.”
그날 이후 사람들은 전자기기의 글씨도 쓰되, 책 속의 글자도 함께 아껴 주었어요.
책과 화면이 나란히 어우러져, 이야기와 지혜는 다시 세상에 가득 넘쳐흘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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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북앤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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